빛이 잘 안드는 울창한 숲은 백화점이나 다를 바 없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진수성친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동물이나 균류, 박테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소리다.
나무 한그루에는 당분과 셀룰로오즈, 리그닌 등 수백만 칼로리가 저장되어 있다. 게다가 수분과 진귀한 미네랄도 많다. 내가 조금전에 백화점이라고 했나? 백화점보다 보물창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여기선 절대 서비스가 안 통하니까, 문은 꽁꽁 잠겨 있고 껍질은 두껍다. 달콤한 보물을 구경하려면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딱따구리가 대표적이다. 특수한 부리와 충격을 완화하는 머리 근육 덕분에 딱따구리는 나무를 그렇게 쪼아 대도 두통이 생기지 않는다.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오르고, 그 물이 맛난 영양분을 싹이 있는 곳까지 실어 나를 때면 딱따구리는 줄기나 가지의 약한 곳을 찾아 거기에 구멍을 낸다.
그 구멍들이 마치 선을 따라 점을 찍어 놓은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나무는 이 상처를 통해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 나무의 피는 보기 괴로운 색깔이 아니라 그냥 물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체액의 손실은 우리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못지 않은 해를 입는다.
딱따구리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수액이어서 흘러나오자마자 신나게 핥아 먹기 시작한다. 그렇디만 근본적으로 나무는 딱따구리가 만용을 부려 과도하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이상 그 정도의 피해는 혼자서도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 몇 해가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보기 싫은 흉터만 남는다.